설악이야기 그리고 테니스도,

이번 회장배테니스대회에는 은밀한 전제가 있었다. 소백과 동강을 종주하여 설악동으로 가야하니, 가능하면 결승에 오르지 말라는 주 모 교수의 전갈이었다.
그러나, 세상일이 그렇듯이 테니스코트도 제맘대로 되는 일이 어디 있나? 사실 채선생과 파트너가 되었을 때에, 어쩌면 작년에 이어 연패를 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첫게임의 미안한 완승을 거둔 후에 너무 방심을 하였는 지, 심-권 조에게 불의의 기습을 당하고, 겨우 사정하여 김-강 조에게 이기고 나니 공테우 역사상 처음으로 3팀이 동률에 같은 승점(2승1패, +5점)을 갖게 되어 할 수 없이 추첨을 하게 되었다. 강선생이 가위바위보에서 1위를 하여 먼저 뽑았으나 탈락되고 우리는 2위로 심-권조가 1위로 올라갔다.
오래간만에 노-김현 팀을 만나니, 역전의 용사들이 그래도 늙지않고 준결에서 볼 수 있어 감회가 새로웠다. 이미 설악행을 위해 에너지를 아껴야한다는 생각은 멀리 가고, 정말 잘해보고 싶었는 데 지고 말았다. 3-4위전에서 다시 만난 심-권조를 이기고 나서 생각해보니 내가 역시 백사이드에 자리잡았어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채선생이 전위플레이를 많이 안하니 역시 백사이드에서 오른쪽 발리를 공격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떄문이다.
B조를 보니 주-신 팀과 정-조 팀이 결승에 올랐고, 김-신영 마저 3-4위 전을 하니 오늘 출발할 팀원 모두 처음 희망과 달리 4강에 다올랐으니 내일 산행이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바람처럼 샤워를 마치고, 소고기국밥을 말아먹고 짐을 챙겨 출발하니 1시 30분이었다. 주선생이 운전하는 무쏘의 건승을 바라며, 오늘 참가못한 처음 멤버들에게 안락한 좌석공간을 제공해 주어 오히려 고마운 마음과 같이 못간 서운함을 동시에 지니며 먼저 풍기로 향하여 달렸다. 작년 겨울에 소백산 등산을 위해 한 번 왔던 길이라 별 새로운 것은 없었지만 소수서원을 지나 소백산을 넘어 달려야 할 길을 찾기 위해 열심히 지도를 살폈다. 정말 아무런 표지판도 없는 길을 찾아 달리니 수련원입구가 있었고, 김삿갓계곡으로 직행하는 비포장도로가 나왔다. 나는 마음속으로 오프로드 바이크가 있다면 이 길을 어떻게 올라갈까 하는 생각을 하였고, 아마 주선생은 산악자전거를 타고 언젠가 이 길을 정복해야지 하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 산속 경치가 호젓한 비포장길과 더불어 우리를 계속 반기고 있었다. 고개를 넘자마자 보이는 약수터가 이 길로 오르는 차들의 주된 목적으로 여겨졌고, 아랫마을은 전형적인 산골마을이었다. 수확이 끝난 옥수수밭이 많이 보였고, 일부는 관광을 위하여 개발 중인 이곳은 김삿갓의 묘소가 있었고, 다리도 김삿갓의 동상으로 네모퉁이를 에워싸고 있었다.
다시 제대로 포장된 길로 나와 동강으로 넘어가는 길을 찾아 달렸다. 녹전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잡은 다음, 예미라는 멋있는 마을을 지나 동강으로 넘어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당연히 또 논쟁이 있었다. 이번 멤버중에서 주선생을 빼고나면 논쟁에서 다들 쉽게 지길 싫어하는 멤버들만 모였기 때문이다. 역시 2:2로 편이 대충 갈렸다. 개발하자는 팀과 보존하자는 팀이다. 입구부터 보이는 수몰민(사실은 수몰예상민 혹은 수몰이 꼭 되길 원하는 외지 투자민)들이 걸어놓은 플래카드로 어수선했다. 그들의 주장은 주로 이러했다. 생존권을 보장하라. 이가을을 넘길 수 있도록 해달라. 등등이었다. 그러나 주선생은 동강을 보고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 하였다.
정말 고개를 넘어서자 말자 백운산 밑의 그 유명한 물굽이가 수려하게 펼쳐졌다. 연이어 이어지는 강변의 비포장길에서 바라보는 동강은 정말 수려하였다. 강 그 자체보다 반대쪽 강변의 수직 바위벽 자체가 환상적이었다. 계림의 리강에서 보았던 완전한 석회암산은 아닌 듯하였지만, 군데군데 동굴입구가 보이는 강변의 바위산이 주는 수려한 경관은 강변의 다소 원시적인 상태와 잘 어울러 우리를 정말 즐겁게 하였다. 나루터에 묶인 나룻배는 유일한 교통수단처럼 보였고, 군데군데 만나는 조그만 마을은 강변마을이라기보다는 산촌마을의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강가에 걸린 지난 폭우의 흔적을 살펴보니 수위가 약 4m 정도 차이가 남을 알 수 있어 아직은 개발되지 않은 상태로 때로는 위험을 내포한 순수한(?) 강임을 잘 나타내었다. 하지만 배나무 묘목을 빽빽하게 식수하여 억지로 꾸며놓은 과수원이 현재의 동강이 지닌 모순을 함께 드러내어 쓸쓸한 여운을 주었다.
이미 해는 지고 어둠이 깃드는 동강을 뒤로 하고 곧바로 정선에 접어들었다. 여기에서 저녁을 하기로 하고, 올갱이탕과 산채순대를 시켰다. 올갱이탕은 생각보다 걸쭉하였고, 산채순대는 함께 주문한 조껍데기 동동주의 좋은 안주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옆 길가에서 사먹은 쑥빵이 더욱 맛있어(사실은 옥수수빵이 주상품인데, 오늘이 정선장날이라 외부 손님이 많아 매진되었다고 한다. 정선5일장 여행상품-철도청) 아쉬움을 남겼다.
오대산을 가로질러 넘어가기로 한 계획은 시간 관계로 포기하고, 임계를 거쳐 성산, 강릉길로 바로 가기로 하였다. 정선을 지나자 말자 곧 만난 아우라지가 정선아리랑의 시원지임은 다들 알았는데, 시원하게 정선아리랑의 곡조가 흘러나오질 않으니 다들 아직 율려를 더 다듬어야 함을 느꼈다. 돌아와서 들으니 정선에서는 이 곳의 300만평을 개발하여 테마여행지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하는 데, 그 전과 그 후가 어떻게 변할 지를 밤중에 지나가며 보았으니 가늠할 수 가 없다. 그저 느낌으로는 춘천입구 주변과 비슷하였다.
몇 개의 재를 넘어 강릉에 도착하여 바로 고속도로에 접어들어 바다를 옆으로 하고 속초를 향하여 열심히 차를 달렸다. 왜, 출발할 때부터 우리는 대포항의 회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8시 30분 쯤 도착한(식사시간을 제외하고 경산에서 속초까지 약 6시간 정도 걸렸는 데, 빠른 지 늦었는 지는 잘 모르나 주선생이 운전한 무쏘는 절대로 추월을 당하지는 않았다.) 대포항은 옛모습을 많이 잃고 초입부터 관광객을 유혹하는 향기가 예전의 한가한 부두의 기억을 덮어 버렸다. 대학 3학년 시절에 써클(요즘에는 동아리라고 하나?)에서 설악산 등반을 마치고 이 곳 대포에서 시간을 보내며 속초발 서울행 직행버스를 기다렸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기 때문이다.그 뒤 몇 번이나 이 곳에 왔지만 중간의 기억은 없어지고 처음 보았던 그 모습만 계혹 남아 있으니 내 메모리는 ROM인 모양이다. 2주전에 답사를 마쳤던 주선생의 도움으로 구석진 곳에서 정말로 싱싱한 회를 맛보았다. 방어와 우륵, 그리고 서비스로 따라 나온 고등어(부산에서는 요즈음 전어가 별미인데, 속초에는 고등어가 별미라고 한다.)가 새로운 맛을 주었고, 밤바다가 주는 포근함이 오늘의 힘든 여정을 풀어주었다.
평소와 달리, 약속된 6시에 정확히 눈을 떴다. 지난 밤에 보았던 나무박사의 나무사랑이, 그리고 그의 일찍 정리된 삶이 그 자신과 가족과 이웃에 충분한 즐거움만 준다는 사실이 미구에 해야할 또 다른 일을 알려주었지만 오늘 오를 산에서 내가 알 수 있는 나무가 과연 몇 그루가 나올까? 우리 윗대만 해도 고향의 산에서 모르는 나무는 한 그루도 없었는데, 물론 그 쓰임새까지도.
양말을 잘 정리하여 발이 편하길 바라며, 이제 23년이 되어가는 등산화의 끈을 묶었다. 오늘의 예정 코스는 설악동에서 비선대를 거쳐 희운각, 그리고 그 유명한 공룡능선을 종주하여 마등령을 거쳐 다시 설악동으로 내려온 다음, 대구를 향하여 출발하는 것이다. 거리로는 약 15km, 예정 등반 시간은 10시간 정도의 쉽지 않은 코스였다. 척산에서 간단히 순두부로 아침을 먹고, 김밥도시락을 중식으로 준비한 다음 설악동을 출발하였다.
역시, 설악동에서 바라보는 권금성쪽의 경치가 등산을 시작하기도 전에 우리의 시선을 압도하였다. 이어 와선대, 비선대를 지나니 완전히 산에 압도당하여 아무 생각도 나질 않는다. 누군가가 금강산에 올라보니 오히려 설악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 데, 아직 금강산을 못보았지만 이 곳 천불동의 화려함과 오묘함은 만불상에 뒤지지 않으리라는 생각이다.
차츰 사람들이 없어지다가 양폭산장가까이 부터는 이제 위에서 내려오는 등산객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중청산장과 희운각산장에서 1박한 후에 하산하는 팀들인 데, 재미있는 것은 한 팀의 비구니승들외에는 모두가 등산화를 신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의 경제가 정말로 그간 발전하였는가? 그럼에도 새파란 머리에 어린 얼굴을 한 비구니들은 모두가 적당한 운동화였다. 어디 승가학교에 다니는 비구니로도 보였는 데, 출가한 이종여동생이 생각나 괜히 가슴속이 아려왔다. 입구의 신흥사가 보이는 위엄과 새로 생긴 대불이 주는 위압감, 그 전에 있었던 신흥사 분규가 내부적으로는 금전과 관련된 일일 진데, 배낭도 없이 손에 짐을 들고, 운동화를 신고 힘들게 내려오는 여승들의 모습은 그 곳에도 혹 부의 편재가 있지나 않은 가 하는 기우를 순간 가져왔다.
양폭에서 잠시 숨을 돌린 다음, 앉지도 않고 바로 올라갔다. 단풍때문인지 암벽도 같이 붉어 보이는 천불동의 수많은 바위틈새를 지나 3시간만에 공룡능선의 갈림길에 접어들었다. 입구에는 등산로가 아님이라고 표지가 되어 있지만 산악인이라면 다 알고 있는 설악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러면서도 위험한 공룡능선으로 접어 들었다. 지난 8월의 학교산행에 동반한 정선생님도 계셨고, 주선생도 몇 번 지나갔었고, 나도 2번을 왕복하였으니, 초행은 김선생뿐이다.
그러나, 계속 추적대던 비가 오히려 이 곳에서는 조금 더 강해지니 가야동과 천불동은 보이지 않고 시야가 약 100 m 정도에 머무르니 오직 공룡능선의 작은 봉우리들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의 휴식년제때문인 지 길이 약간씩 변경되어 있었으며, 약 1시간 거리의 암벽 횡단은 사실 위험한 코스였다. 그러나 그 전에 밑으로 내려가는 길입구도 있었는 데, 지나서 보니 그대로 갔다면 가야동계곡 쪽으로 내려갈 길이었다. 미끄러지면 1-20m 의 암벽을 밑으로 하고 클라이머처럼 바윗길을 지나 조그마한 능선쉼터에서 점심을 먹고, 예전에 보았던 샘터를 찾았으나 무너미자국도 보이질 않았다. 아마 봉우리를 우회하는 길에서 약간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계속 올랐다가 다시 내려가고, 암벽을 돌아서 가는 특유의 공룡능선길을 힘들어 통과하고 드디어 마등령에 도착하였다. 쉬면서 가지고 온 온갖 부식들을 먹고 있는 데 내의에 비닐비옷만 걸친 범상치 않은 50대 남자가 휙 나타나 오세암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길을 가르쳐주고 이야기를 한참 하고 있는 데, 그가 다시 나타났다. 길은 있는 데 방향이 혹 틀린 것이 아닌 가 하는 것이다. 사실 예전의 길입구에는 등산로가 아님이라는 표지가 있었고 오세암으로 가는 길이 약간 남서쪽으로 방향이 틀어져 있었다. 아무리 실수를 해도 방향이 그 곳 뿐이니 다시 설명을 하여 보내고 나니, 그 어른도 보기에는 혼자서 산행을 하고 차림새도 시원하고 하여 대담한 사람이라고 여겼는 데, 산가운데 아무도 없는 길을 가기에는 역시 두려운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예전에는 마등령을 뛰어 내려갔다고 호기를 부렸으나, 이제는 이 길도 만만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등령에서 보는 단풍은 제대로 된 색깔을 뛰고 뒤로 천불동의 바위를 배경으로 멋있게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이름도 없는 바위에 우리 이름을 따서 몇가지 이름도 붙이고 하며 왼편으로는 멀리 울산암을 앞으로는 비선대와 금강굴을 바라보며 마등령을 약 2시간 만에 내려왔다. 예정보다는 1시간 이른 9시간의 산행으로 코스를 끝내기가 아쉬어 비선대가게에서 캔맥주를 마시며 마지막 산행을 즐겼다. 온갖 잡설로 설악의 정기를 물들게 하여 미안하였지만 불가능하게 보였던 강행군을 아무 사고도 없이 끝내게 해주니 모든 것이 고마웠다.
관동대학교 근처에서 목욕을 한 다음, 오는 길은 성산에서 태백, 봉화, 영주를 거치는 코스로 잡았다. 강릉 성산의 정갈한(?) 소머리국과 오징어무침을 뒤로 하고 9시경 출발하여 또다른 미답지를 달렸다. 그러나 태백의 경제 부흥을 위해 머물렀던 2시간의 스토리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다.

추신: 설악의 정기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주말까지 방치해두었던 턱수염의 득인지 아니면 위에서 이야기드린 채모와의 위치를 조정하여서인지 토요일 벌어진 23회총장배타기(?)테니스대회에서 김승기선생과 한 조가 되어 모처럼 만에 우승을 차지하였다. 공대회장배의 경험도 있고 하여, 자리에 대한 토의를 서로 해 본 결과, 이번에는 내가 백사이드에 서기로 하였다.(평소 김한 모와의 페어에서도 같은 자리로 연습해 왔는데, 공의 힘이 약한 내가 플레이하기에는 좋은 자리이다. 그러나 스매싱에는 다소 문제가 있고, 백발리와 백스트로크가 역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예선리그에서 우리와 맞붙은 팀은 류호상-장명환, 김한곤-김교형, 최광수-한광걸, 천장호-이승렬 조였고, 아무래도 최근에 체력 및 기술에서 가장 우수한 류-장 조가 우승후보로 지목되었고, A-2조에서는 김복만-이동주 조와 강길호-김국진 조가 유력하였다.
우리 조는 첫게임에서 만난 최-한 조를 손쉽게 이기고, 이어서 만난 역대 3회 우승의 위업을 갖고 있는, 그러나 최근 2년의 보직으로 다리 힘이 많이 빠진 천-이 조를 만나 초반의 어려운 2게임을 선방하고 계속 승기를 잡아 6-2로 리드하니 약간은 방만한 마음이 생겼다. 한 게임 쉬고 만난 김-김 초등학교 동창팀은 역시 강했다. 김한곤 선생의 수읽기는 역시 탁월하여, 로빙에 농락당하다 겨우 영패를 면하여 4-6으로 져서, 거의 포기 상태였다. 그러나 마지막에 만난 가장 강팀인 류-장 조에게 첫게임을 주고 내 서브게임에서 듀스를 간 후 겨우 1-1 로 만들고 나니 해볼만하다은 생각이 들었다. 다음 장명환선생의 서브게임을 듀스를 7번 정도 간 다음, 우리가 져서 1-2가 되었다. 코트를 바꾸면서 잠시 우리는 작전대담을 나누었다. 즉, 장선생이 비록 이겼지만 듀스를 7번이나 갔으니, 이 게임은 우리로서는 아주 잘한 것이다라고. 역시 김선생의 서브게임을 쉽게 잡고, 류선생의 서브게임마져 잡고 나니 게임의 분위기가이미 넘어 와 버렸다. 이렇게 가장 강팀을 6-2로 잡고나니 2팀이 전패가 되고 나머지 3팀이 동률이 되었다. 마지막 게임인 김한-김교 대 류호-장명 의 결과에 따라 우리 팀이 2위 혹은 1위가 되는데, 예상대로 우리 팀에 패한 류-장 조가 제실력을 발휘하여(이 때 그들은 자리가 잘못 된 걸 알고 류선생이 포로, 장선생이 백으로 바꾸었다.) 6-3으로 이기는 덕분에 그 팀은 3-4위 경기로, 우리는 결승전에 임하게 되었다.
결승전에서 만난 이동-김복 조는 센 스트로크와 김선생의 현란한 기술로 인하여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역시 이선생의 첫 서브게임에서 우리는 힘도 못 쓰고 40-15에서 게임이 끝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옆에서 구경하던 분들도 내기를 8:2로 이-김조에게 걸었다고 한다. 내 서브게임을 역시 어렵게 딴 다음 생각하니 역시 힘들겠다고 여겼다. 이선생의 리시버가 워낙 좋아 서브로 주어야 할 마땅한 자리가 나오질 않아, 한번은 포쪽으로 좋은 공을 넣었는데, 이걸 김승기선생의 백쪽으로 바로 리시브하여 득점을 하니, 참으로 힘들었다. 그러나 김복만선생의 리턴이 약간 약하여 겨우 한게임을 잡았다. 김복만선생의 서브는 그날따라 그렇게 세지 않았다. 약간의 재수를 포함하여 그 게임을 잡고 쉽게 3-1로 도망갔으나 또 반격을 당하여 4-4까지 갔다. 이선생서브를 겨우 막으니 5-4, 내 마지막 서브에서는 오히려 마음이 편하였다. 40-30에서 한 번 마음먹고 때렸다가 네트에 걸려 다시 듀스가 되었고, 다음 다음 서브에서 성공한 다음, 서브를 오히려 김선생몸쪽으로 유도한 것이 리턴 아웃되는 덕분에 6-4로 게임이 끝났다.
힘든 하루였으나, 시지동 카스에서 생맥주를 기울이며 호기있게 국후담을 이야기하고 다들 같이 지낸 즐거운 시간으로 피로를 풀었다.